↑ 한국 홈스테이의 호스트 패밀리와의 만남. 가족으로서 허그로 서로의 정을 확인합니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인 동시에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었습니다. 게다가 하나 더하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으로부터 1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이 해 당 단체에서도 한국 국회에 일본의 교육자 100여 명을 초청해서 개최된 학술 세미나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 개최를 중개, 협력했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미래를 응시한 청소년들의 교류 프로그램이 의의 깊은 것이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는 처음에 제가 한일간의 문화 차이를 강의하는데 그것을 실감하기 위해 실제로 ‘자매결연’과 ‘홈스테이’를 경험하는 “가족의 정 맺기 프로젝트”라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가정 원리’의 문화 속에 살고 있고 무엇보다도 ‘가족이 된다’ 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자매결연도 ‘형제가 된다’, ‘자매가 된다’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만난 그 순간부터 생이별한 형제를 찾아낸 것 같이 곧바로 정이 연결되는 것을 봅니다.
또한 ‘홈스테이’도 호스트 패밀리라고 하는 ‘가족’이 됨으로 말미암아 ‘아들아’, ‘딸아’ 하면서 “이제는 한국의 네 집이라 생각하고 언제든지 놀러 와라” 해 줍니다. 호스트 패밀리 찾기도, 우리 단체 회원 SNS를 통해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 분들에게 알리면 단 1시간 만에 ‘꼭 우리 집에 묵어 주세요!’ 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원이 찹니다. 모두 기꺼이 신청해 옵니다.
결국, 한국 문화의 중심은 가정 문화인 것입니다. 이것은 즉 사회적인 경험으로서의 관광이나 외식을 가지고는 한국의 진정한 문화는 좀처럼 접할 수 없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해 없는 진짜 한국인의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가족’을 경험하게 하는 이 두 가지 교류 방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말하면, 길 가는 사람들과의 ‘프리허그와 악수’라는 프로그램도, 가족 간의 정이 가까워서 어렸을 때부터 스킨십을 잘 해온 한국인의 인간관계의 정을 느끼는데 매우 유효한 방법입니다. 한국 분은 허그 할 때 자연스럽게 ‘사랑해요~!’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사랑’을 민첩하게 경험할 수 있는 실로 체감적 프로그램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인 참가자 소감문 ======================================
■우리는 한국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저는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에 좋은 인상이 없었습니다. 일한(日韓) 관계도 나쁘고 뉴스를 봐도 좋은 것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친구 중에 일본과 한국의 혼혈 아이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정이 두터워 제가 고민하고 있으면 언제나 손을 내밀어 줍니다. 또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이것으로부터 제 마음속에서 모순이 생겼습니다. 그 친구는 좋아하지만, 한국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좋아하지 않는 것은 뉴스나 누군가에게 들은 나쁜 소문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서 저는 자기 눈으로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습니다.
3일간의 기간은 순식간이었지만 이 기간을 통해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은 정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은 규칙이나 매너를 중요시하지만 한국은 자기의 마음, 상대의 마음을 매우 소중히 합니다. 그러니까 겉과 속의 차이가 없있습니다. 자신에게 솔직합니다. 그리고, 우리 일본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챌린지(도전) 프로그램’을 통해 느꼈습니다.
‘챌린지 프로그램’은, ‘3·1 독립운동’이 있었던 인사동에서 실시했습니다. 거기서 일본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을 때, 원한이나 미움이 많은 민족끼리라고 느꼈습니다. 그것은 일본이 한국에 대해 범한 잘못 때문입니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을 사랑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다!’, ‘FREE HUG FOR PEACE’라고 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말을 걸면서 걸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편견도 없이 흥미를 갖고 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혀 모르는 일본인이지만, ‘사랑해요~’라고 하면서 웃는 얼굴로 꼭 껴안아 주는 한국 사람들과 많이 만났습니다. 같은 또래 아이만 아니라 어린아이들부터 노인분들까지 전 세대의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역사를 봐도 괴로운 과거를 생각나게 해야 할 일본에 대해 용서하고 사랑해 주는 다정한 한국인들과 피부로 접촉하여 얼싸안음으로써 마음의 벽이 쑥 풀려 갔습니다. 우리가 수동적인 자세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야말로 한국을 사랑해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홈스테이를 통해 우리 일본 사람은 정말로 한국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라고 알았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사랑하며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남이 말해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고 느낀 것이기 때문에 진짜입니다. 앞으로 일한 양국의 다리 역할이 되어 가는 것은 우리입니다. 저도 어학을 공부하고 앞으로 일한 우호를 위해 계속 노력해 가고 싶습니다. (Y.F씨/여)
■만나면 가족과 같은 관계 맺을 수 있는 사람들
프로젝트 첫 시간에 강의로서 일한의 문화 차이를 배우고 일본과 한국의 청년끼리 토론을 하는 가운데서, 서로의 나라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적은 것, 또 알려고 하는 사람이 적은 것도 일한 관계의 틈을 깊게 하는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번에 실제로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접하는 가운데 새롭게 아는 것이 많이 있어 실제로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첫날에 한 일한 자매 결연식에서는 매우 긴장했지만 나와 결연을 한 상대가 만난 순간부터 ‘언니!’라고 불러와 진짜 언니인 것처럼 친하게 접해 주어서 아주 기쁘게 느꼈습니다.
2일째에 간 파고다(탑골)공원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고 시민이나 학생이 독립운동을 한 ‘3·1 독립운동’이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고 온 한국에 퍼진 독립 운동의 모습을 새긴 12장의 석탑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석탑에 새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한국에 대해 해 온 역사적 사실에 직면하고 정말로 죄스러운 마음으로 가슴이 괴로워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욱 앞으로의 사회를 맡아 가는 청년이 일한의 교량 역할이 되어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 자신도 그 한 사람으로서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후, 인사동 거리에 가서 한국의 청년과 함께 ‘챌린지 프로그램’을 실시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다!’, ‘FREE HUG FOR PEACE’라고 적은 보드를 손에 들어 서투른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저희는 일본인입니다’, ‘악수 부탁합니다’라고 열심히 이야기하면서 서명 운동을 했습니다.
한국의 청년들과 2시간 가까이 활동하니까 서명 보드 새까맣게 될 정도의 서명이 모였습니다. 눈을 보고 말을 건네면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웃는 얼굴로 기분 좋게 서명이나 악수에 응해 줘서 나라의 벽은 스스로가 마음을 열고 상대를 사랑하는 노력을 해 나가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실감했습니다.
홈스테이도 그렇습니다만,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과 접하면서 상대를 위해서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면 자신보다 먼저 상대를 위해 진력하는 정신, 한 번 만나면 ‘언니!’, ‘우리 딸!’이라고 하면서 친하게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한국 문화의 훌륭함, 한국인의 대단함을 알았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와 같이 서로의 나라를 이해하고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만들 수 있으면 일한 관계는 반드시 좋아져 간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국경을 넘은 호스트 패밀리나 여동생들과 교류를 계속해 가면서, 우선은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곳으로부터 일한 우호를 넓혀 가고 싶습니다. (A.T씨/여)
■국가끼리 사이가 나빠도 우리는 하나 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았습니다.
일본의 이웃 나라 한국에는 물리적으로 가깝다고 하는 이유 외에 더 K팝이나 드라마 등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면 한국 측에서는 식민지 지배나 종군위안부 문제 등 일본에 그다지 좋은 인상은 없고 오히려 나쁜 인상이 강하며, 뉴스를 봐도 일한 관계는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욱 이번 프로젝트는 일한을 잇는 좋을 기회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국제 협력이나 이 문화 이해에 관심은 있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던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시간에 일한 문화 비교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면서 조금 서로의 문화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은 받은 것에 기쁨을 돌려주는 수동의 의식이 강한 데 비해 한국은 받는 것보다 주고 싶다는 주체 의식이 강하다고 하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적극적으로 질문이나 이야기를 해 오는데 일본인은 열심히 대답하고 있다는 그 시간의 광경을 봐도 ‘그대로다’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것은 인사동에서 함께 도전한 챌린지 프로그램으로 더욱 현저하게 느껴졌습니다.
거기에서 일본에서는 체험하지 못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프리허그와 악수’ 그리고 일한 우호를 위한 서명 활동이었습니다. ‘실제로 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해도 아무도 와 주지 않은 것 아닌가’ 하면서 솔직히 불안하고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멤버가 솔선하고 모범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함께 활동하는 가운데서 서명이나 사진, 악수, 허그 해 주는 사람이 자꾸자꾸 늘어 간다는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문화의 차이를 느끼는 동시에 서로 이해해 가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 후에 홈스테이를 하는 가운데서 한국에서의 진짜 생활을 직접 체험하면서 자꾸자꾸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사람의 마음의 따뜻함 다정함을 느꼈고 나라끼리는 사이가 나빠도 우리 청년 학생들의 관계가 좋아진다면 그 관계성도 바뀌어 가는 것은 아닌가 라고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자유롭게 말이 통하면 더 좋은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한국말을 공부하고 한 번 더 가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S.D씨/여)
■‘아직 부족하다’ 하면서 더 주려는 한국의 정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를 정말 잘했다!’라고 제 생각한 첫 번째는 ‘자매결연식’입니다. 한국 분과 1 대 1로 증서에 서명하고 형제가 되어서 정을 묶는 식입니다. 저는 연하의 ‘남동생’하고 함께 서명했습니다만, 정말로 그와 형제 같았습니다. 그는 일본어도 능숙했기 때문에 저의 선생님이 되고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귀국한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제가 일본에 초대해서 관광 안내를 해 주고 싶습니다.
2번째는 ‘홈스테이’를 통해 ‘한국인의 정’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나를 묵게 해 주신 분은 69세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분도 20년전에 일본에서 홈스테이를 경험하고 거기서 일본의 문화에 감동하고 일본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희에 대해서도 아주 잘 해 주고 식사나 선물, 마지막으로 노래방까지 데려가 주셔서 정말 즐거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나는 20년전에 일본에서 아주 좋은 경험을 했다. 너희들에게도 똑같이 훌륭한 경험을 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데 아무것도 못 해 주었다’. 맛있는 식사를 사 주시고 저희를 기쁘게 하려고 노래방에까지 데려다주었는데 ‘아직 부족하다’라고 하고 더 주려고 해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너무나도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만 어느 한 것도 일본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추억입니다. 저의 시야가 크게 넓어져서 그리고 장래의 목표로 하는 내용도 커졌습니다. (T.M씨/남)
■‘가족이 있는 날아가고 싶은 나라’가 됐다
이번 일한 청년 교류 프로젝트에 참가한 지금, 저의 마음속은 희망과 감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가 가장 기대하고 있던 것은 자매결연식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할 수 없지만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 친구가 열심히 일본어로 말을 걸어 주는 모습이 정말로 기뻤고 ‘○○창(ちゃん), ○○창(ちゃん)’이라고 불러 주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문화 비교 강의를 듣고 많은 문화 차이에 놀랐습니다만 서로를 인정하고 일한 양국이 조화를 이룬다면 반드시 훌륭한 문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홈스테이를 한 한국 가정은 일본을 아주 좋아하는 두 명의 부부였습니다. 항상 친절하게 배려를 해 주고 식사도 정말로 맛있는 것을 해 주었습니다. 식사 후에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정치면 등으로 일한 관계에 문제가 있다 해도 저희 일본인에 대해 큰 애정으로 접해 주는 것을 알고 정말로 기쁘고 감동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단순한 외국이 아니게 되고 ‘가족이 있는 나라’라는 인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금방이라도 날아가고 싶을 정도 정말 좋아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또 가고 싶은 마음으로 폭발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일한 관계를 항상 의식하면서 나날 생활해 나가고 싶습니다. 어떤 일에도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아무리 피곤해도 웃는 얼굴을 잃지 않는 한국의 그들과 같은 훌륭한 청년을 목표로 하고 열심히 나아갑니다.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R.A씨/남)
인사동에서의 프리허그와 서명 활동.
처음에 자매결연하기 전에 한일간의 문화 차이에 대한 강의와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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