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한국이 수많은 기적을 이루어온 진정한 힘을
결론으로서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본래 아시아의 근대화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중심이 되었어야 했고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러기 위해 조선시대 말기에 고도의 도의주의를 확립한 유교자들이 스스로 천주교를 받아들여 ‘근대정신’의 바탕을 만들어 갔다. 일본은 일본 나름으로 그 합리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많은 근대용어를 번역하여 아시아의 ‘근대제도’ 확립에 크게 공헌했다. 일본의 역할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역사에 ‘IF’는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 때, 고종황제의 한국의 ‘신의와 사랑’의 정신으로부터 아시아의 근대화가 시작되어 가는 길이 있었다면, 그 후의 아시아의 역사, 동양과 서양을 잇는 관계의 다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실제로 현재 개신교 기독교 정신을 중심한 국가군인 연합국 = 유엔 중심의 세계평화 이상이 이 지구성을 리드하고 있는 것으로도 이미 증명되고 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주자학의 도덕주의로부터 점차 기독교 도의주의를 받아들인 한국이 만약 그 정신을 가지고 주도해 주었다면 아시아제국은 구미에 대한 반역의 길을 가지 않아도 되었고 거기에 따른 많은 희생, 솔직히 말해 일본국민 자신의 어마어마한 생명의 희생도 없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그것은 일본 나라를 구하는 길도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반도에 수많은 희생과 남북분단의 비극도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시아를 잇는 다리는 일본으로부터의 ‘기술력과 제도’도 아니고 지금의 중국의 막강한 파워도 아난, 대한민국으로부터의 ‘신의와 사랑’의 다리가 되고 거기서부터 뻗어나가 전세계를 선의 이상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역사는 결코 반복 되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국민들이 스스로의 그 문화적 가치와 역할을 자각하면서 주체적인 중심국가로서의 위상을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이 부조리한 세계에 있어서 그래도 분명히 인류의 이상은 한걸음씩 실현을 향해 가고 있고 거기에 따라 한사람 한사람의 양심도 눈을 뜨고 있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도의주의적 이상의 힘은 이 나라가 수많은 기적을 이루어 온 원동력이다. 실제로 표면적으로 완전히 약육강식의 힘의 시대였던 그 황폐한 시대에 있어도 대한민국은 스스로의 도의주의의 코드를 가지고 과감히 ‘신의와 사랑’의 외교관계를 열어 갔다. 이제 다시 그 인류의 정의와 이상에 대한 한국사람의 믿음이 인류의 미래는 새롭게 열려 갈 때이다.
1884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전등이 켜진 것은 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내각인쇄국이었다. 한국도 같은 해에 에디슨램프회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실제로 그것이 켜지게 된 것은 3년후의 1887년 3월 6일, 경복궁 부지내였다. 고종은 거기에 훌륭한 시계탑을 씌운 2층 양옥인 ‘관문각’을 짓고 중국식 벽돌로 지운 중국풍 ‘집옥재’도 이전시켰다. 한국의 왕궁내에서 한국식, 서양식, 중국식이 조화를 이루는 그 가운데서 켜진 전등이야말로 아시아에 켜진 진정한 평화주의 근대화정신의 등불이었다고 믿어 마지않다. 한번 더 그 밝은 불빛을 켜는 희망의 날이 기다려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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