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개

한일 간의 평화와 우호를 위해 기도 올린 한국의 중고생들!

명성황후 공양을 위한 보살상( 오른쪽) 앞에서 한일 간의 평화를 위해 기도 올리는 한국의 아이들.

●구시다 신사와 한일 간의 끊을 수 없는 관계

감동적이었던 지난 회의 청소년 한일 교류 투어 중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것이 이 화제. 한일 간의 평화를 위해 기도 올린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지난 회에 실은 맨 처음으로 관광한 것이 하카타의 구시다 신사였습니다. 그 때 마침 한창이었던 777년 역사를 자랑하는 축제 ‘하카타 기온 야마가사’의 봉납 신사가 거기였기 때문입니다.

‘기온제(祇園祭)’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일본의 스사노오 신(=기온 대신)을 모시는 축제이며, 스사노오는 <일본서기>에 의하면 신라의 ‘소시모리’에 강림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서기>가 쓰여진 당시에 벌써 신라 영토가 되어 있던 가야의 ‘소머리산’, 현재의 가야산일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소머리산’인데, 스사노오가 이윽고 일본의 신불습합(神佛習合)을 통해 불교의 ‘우두천왕(牛頭天王)’이라고 칭해졌던 것도 관련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스사노오를 모시는 것 자체가 한반도에서 온 도래인의 발자국을 기념하여 한국과 일본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혹은 일본 축제의 ‘왓쇼이’의 구호가 ‘왔어이’에 유래한다고 하는 설이 있어, 만약에 그렇다면 ‘하카타 기온 야마가사’에 독특한 구호인 ‘옷쇼이’도, ‘오시오이’이라고 하는 한국어 방언을 느끼게 한다 라는 정보를 기본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 위에 제가 설명한 것이 이 구시다 신사에 봉납되어 있는 ‘히젠도(肥前刀)’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1895년 일본의 조선공사 미우라 고로가 중심이 되어 명성황후 암살을 기도하고 미우라 고로의 개인 비서였던 후지 가쓰아키(藤勝顕)가 명성황후를 살해한 칼입니다.

당시 , 왕비를 ‘여호(女狐)’라고 불러 이 사건을 ‘여우 사냥’이라고 칭했기 때문에 그 칼의 칼집에는 ‘一瞬電光刺老狐/夢庵勤識’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늙은 여우를 전광과 같이 일순간에 찔렀다’라는 의미이며, ‘몽암(夢庵)’은 후지 가쓰아키의 호입니다. 미우라와 후지는 그 후, 히로시마 재판소에서 조사를 받지만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됩니다.

그러나, 그 13년 후인 1908년이 되어서 후지는 ‘왕비가 죽을 때의 얼굴이 떠오르고 마음이 편치 않아 공양하고 싶다’라고 하고 그 칼을 절신원(節信院)이라는 절에 봉납하려고 하는데 그곳에서는 ‘더러워진 칼을 불교에서는 못 받아 들인다’라고 거절 당하게 되어 여기 구시다 신사에 봉납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명성황후 공양을 위한 ‘자안 관음보살상’

왜 제가 중고생들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했냐 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을미사변의 그 일본 측 뒷이야기로서 바로 그 죄를 범한 본인이 처음에는 그것을 자랑하고 있었을지 몰라도 이윽고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며 그 죄를 뉘우치게 되면서 명성황후를 위한 공양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후지 가쓰아키는 칼을 구시다 신사에 봉납한 후, 처음에 봉납을 거절 당한 절신원에 거액을 들여 왕비의 공양을 위한 청동상인 ‘관음보살상’을 세웠습니다. 이번 투어의 마지막 날, 맨 마지막에 들린 관광지가 바로 이 절신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은 절신원에 이 후지가 세운 ‘관음보살상’자체는, 제 2차 대전 말기에 군수 물자로 공출 되어서 없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그 후, 후쿠오카에 대공습이 있었고 그 다음날에 어느 독지가 부부가 정확히 관음상이 있던 그 장소에 남겨진 여자 아이를 발견하고 고아로서 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딸이 19세에 죽게 되면서 딸의 공양을 하려고 절신원을 찾아 갔더니 거기에 있었던 관음상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부부는 거기에 무엇인가의 인연을 느끼고 다시 그 명성황후 공양을 위한 ‘관음보살상’을 복원하게 되는데, 그 때에 딸를 생각하고 갓난아기를 안게 하는 형태의 석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것이 ‘자안(子安) 관음보살상’으로서 남아 있습니다. 석상 옆에는 그 유래가 정확히 쓰여져 있습니다.

저는 중고생들을 거기에 데려 가서 그 석상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여기는 한국과 일본의 우호와 평화를 비는 장소입니다”라고 했는데, 그 순간에 이번 투어 리더였던 여학생이 “애들아, 우리 한일 간의 평화를 위해 기도드리자!”라고 말하고 모두가 잠시 묵도를 올렸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 이것이 이번 한일 교류의 모든 일정을 통해 얻어진 결실이었고 이제는 수복이 불가능한 것만 같았던 역사의 무거운 사실도, 밤을 지새우면서 교류한 양국의 아이들의 젊은 힘에 의해 극복될 수 있는, 그러한 희망을 느끼게 해 준, 이 때의 한국 중고생들의 기도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봉납되어 있는 구시다 신사.

절신원의 관음보살상. 2차 대전 전에 청동상이었던 것을 복원한 ‘자안 관음보살상’.

오른쪽의 여학생의 말에 의해 모두가 한일 간의 평화와 우호를 위해 묵도를 바쳤습니다.

아픔과 슬픔을 넘는 고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한일비교문화학 전문가/ 문화교류 코디네이터/ 한일미래하트탱크 대표/ 삼성인력개발원 주재원과정, 지역전문가과정, 글로벌과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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